적혈구 사이 트리파노소마 기생충
Protists & protozoa

적혈구 사이 트리파노소마 기생충

혈류의 내부에 완전히 잠겨 있는 이 시야는 사방으로 빽빽하게 들어찬 쌍오목 원반들로 가득 차 있다 — 창백한 장밋빛 쿠션처럼 생긴 적혈구들이 위아래로, 좌우로, 깊이의 모든 층면에서 겹치고 눌리며 무한한 분홍빛 지형을 이루고, 그 중심부의 얇아진 곳으로는 온기를 머금은 호박색 빛이 희미하게 투과되어 주변 혈장 속으로 부드러운 안개처럼 번진다. 그 사이사이를, 살아있는 붓글씨처럼, *Trypanosoma brucei* 몇 마리가 뱀처럼 구불구불 누비고 있다 — 짙은 청자색의 유선형 몸체가 장미빛 배경 위에서 뚜렷이 도드라지며, 한쪽 가장자리를 따라 물결치는 편모막이 얇은 비단 리본처럼 라벤더와 인디고 빛을 찰나마다 반사한다. 각 기생충 내부에는 핵과 키네토플라스트가 거의 검은 자주색 응집으로 새겨져 있는데 — 키네토플라스트는 후단부에 어두운 씨앗처럼, 핵은 몸통 중앙에 조금 더 크고 둥글게 자리 잡고 있으며, Giemsa 염색의 수채화 번짐 같은 내부 질감이 그 구조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. 기생충들은 적혈구라는 거대한 바위들 사이의 좁은 통로를 몸으로 정확히 채우며 유영하고, 이 혼잡하고 고요한 세계 속에서 물결치는 편모막만이 유일하게 방향을 가진 운동으로 존재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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